Mar 28, 2009

기분나쁜 하루 기분좋은 밤

일찍 일어나자 어젯밤에 다짐했건만 아침에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자리에서 무려 두시간 동안 뒤치닥거리다 나갈 시간에 겨우 맞춰 허겁지겁 씻고 나온다. 나름 따뜻하게 입었는데 왜 이리 추운지.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 밖에 내리는 비를 본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는데 다시 올라가 우산을 들고 나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아침에 드라이한 내 머리를 부시시하게 만든다. 바쁜 와중에 드린 수고는 헛것이 된다.

모처럼 모닝커피를 마신다. 내가 가장 귀여워하는 잔에 커피를 타서 마시고 컴퓨터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발위에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진다. 머그가 깨지고 커피가 바닥에 엎질러진다. 상담시간은 다가오는데 이게 뭐람. 허겁지겁 치운다. 손톱아래 뭔가 따끔한다. 검지 손가락과 손톱 사이에 유리조각이 끼어 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지혈은 안된다.

오전 내내 떠들었더니 배가 고프다. 첫 젓가락질에 음식을 입에 넣으려는 찰나에 뭔가 치마에 떨어진다. 가장 아끼는 치마 중앙에 빨간 양념이 묻는다. 배고픈데 먹을 것을 뒤로한 채 열심히 닦는다.

할일은 많은데 걱정만 앞선다. 졸리고 피곤하고 춥고 머리까지 아프나 집에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마음가는 곳에 몸도 간다던데 요즘 내 마음은 한 곳에만 있다. 그래도 쉬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니 집으로 향한다. 발이 아프다. 스타킹을 벗어보니 손가락만 다친게 아니구나.

참 기분 나쁜 하루다. 그래도 범사에 감사하랜다. 감사할 것 하나를 찾고 자야 편할 거 같아서 침대 위에서 하루를 되새겨 본다. 쏟은 커피가 다행히 식어서 난 발을 데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살짝 웃는다.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인생이 설계되어 있어서 놀랜다. 운이 안좋다라고 생각되는 하루라도 감사할 거리가 있어서 신기하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말씀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진리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오늘밤은 기분이 좋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