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4, 2009

대학동기 선애의 일기 - 3월23일

아침에 버스 타고 출근하고 있는데
순복음교회 앞에서 할머니가 무임승차하셨다.
아저씨는 내리라고 난리고
할머니는 추워서 두 정거장 앞인 여의나루 역까지 못 걷겠다고
사정하시고 그랬다.

그 시간 그 추위엔 아직 나도 여의나루 역까지 걸어가기가
수월한 게 아니다.

왠지 실랑이가 길어지면
아저씨가 할머니를 끌어내릴 것만 같아서
나는 그냥 할머니에게 천원을 건넸다.

할머니가 다섯 번 정도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나님께서 천배 만배로 하늘 나라에서 보상해 주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주스 한 잔 값에 너무 공치사를 심하게 들어서 마음이 불편한 나는
혹시 주위 사람이 들을까봐 왠지 그게 더 창피했다.
대단히 착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여러 사람의 속이 상하는 걸 생각하면
(무임승차 당한 아저씨 + 아들뻘 아저씨한테 호통 듣는 할머니 +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승객들 +
물론 아침 출근 시간에 조급한 나)
매우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을 치뤘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내가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은
어쩐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버스를 얻어 타는 것이
매우 익숙해 보이는 그 할머니가 보였던
약자가 되는 것에 익숙한 태도였다.

그런 일들은 언제나 마음이 좋지 않다.

나는 오지랖이 매우 좁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가끔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유별나게 착하거나 다정해서라기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불합리함을 그렇게라도 보상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무감의 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타인을 돕고 나면
항상 기분이 맑지 않다.

사회는, 이 "creative destruction"은 끊임없이
구조적으로 약자를 낳으면서 또 깔아 뭉개면서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한 자본주의자에 가깝지만
자본주의의 그늘은 항상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들 슬쩍 눈을 돌리고 마는 것일까.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