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10, 2008

과학과 기술과 인간의 미래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사람들은 모두 투자은행의 위력에 감탄을 했었다. 전 세계는 투자은행의 거래에 좌지우지 되는 것만 같았고 이 업계에 커리어를 쌓는 것이 청년들의 로망이 되었다. 이 곳에서 활동하는 직원들의 두뇌는 형언할 수 못할 만큼 뛰어난 것 같았고 지식과 기술력으로 돈을 부풀려가던 그들의 능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부를 창조하는 테크닉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몇만 키로 떨어진 미국에서 발생한 모기지 문제가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의 부의 가치를 반토막 낸 것이다. 기술을 통한 실존하지 않은 돈을 창조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기술과 지식이 부를 한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기대와 자만의 엔트로피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왔고, 이번 사태는 엔트로피를 한 번 낮추는 계기가 되었다. 이젠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현란한 기법이 아닌 현존하는 돈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술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많은 발전과 성숙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칫 기술이 가치중립적이지 때문에 사람의 의식만 바르면 좋은 사회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기술이 진정 가치중립적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싶다.

기술이 과학으로부터 왔다고 하니 과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자연과학이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고 그 법칙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학문이며 인문사회과학 또한 인간관계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이 발견한 법칙을 따라 우리는 여러 가지 기술을 창조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칙을 따라'이다. 우리가 개발하고 사용하는 기술은 우리가 탐구하고 진실이다고 믿는 법칙과 섭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모기지 사태를 예로 들자면, 자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는 노동으로 생산되는 것이 인류사의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섭리를 무시한 채 보이지 않는 부의 버블만 만드는 기술을 신봉했었다. 섭리에 거슬리는 즉 '거짓'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기술과 이를 사용하는 인류는
이번 경제난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른다고 판단된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가치 있게 잘 사용하자라는 위험성 있는 논리가 아닌 자연과 인류의 법칙과 섭리를 따르는 기술인지 아닌지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은 기술은 중단되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필요가 없다. 증가되는 엔트로피가 없어지는 아픈 과정에서 우리 인류가 반성하고 학습을 하는 과정 물론 나쁘지만 않지만...

나는 특히 요즘 대두되고 있는 유전자 기술, 인터넷 정보화 기술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렸으면 한다. 어떤 부분이 섭리에 합당하며 어긋나는지에 관하여 철저한 과학 정신을 가지고 기술이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올바른 판단력이 없는 한, 즉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을 가지지 않은 한 우리 인류는 필요 없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붕괴의 고통 속에서 아파하고, 고민하고, 불신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이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인류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보편적 진리와 섭리에 충실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것이며 새 출발에 대하여 희망을 또한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