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1, 2008

Ethics

나의 하나하나의 행동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라는
교육은 어릴 때부터 받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수 없이 훈련 해왔고 지금도 어떠한 상황이나 행동을 할 때
나만의 잣대로 평가한다.
30년의 세월 동안 길러온 그 잣대로 난 오늘도
나와 남의 언행을 판단하고 심지어 비판해 버린다.

어느 날 난 다른 사람, 다른 문화권에서의 잣대는
나의 잣대와 다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혼란스러워 한다.
분명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나의 기준이 옳아야 하는데,
상대방의 배경, 상황을 보니 그들의 기준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윤리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게 될 때
꼭 이성적이어야 할 필요 없음을 배워간다.
감성도 합리성을 완성 시킬 수 있다라는 것도 경험한다.
이성과 직관과 감성이 나의 윤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때문에
난 요즘 이 세 요소를 잘 밸런스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윤리적 의사 결정과 윤리적 행동에는
이성과 감성의 조합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 조합이 깨질 때 올바른 결정을 못 내린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 밸런스를 놓쳐버린 경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너무 커져갔다.

나의 윤리 기준 영역 안에서 감성이 이성의 영역을 침해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 같았다.
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커져가는 잘못된 감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이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새 나의 윤리 기준이 변경 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했는데
역시 도움이 안 되는 결론만 도달했다.
나의 새로운 기준이 누구에게는 괜찮았고,
누구에게는 아니 되는 것이었고,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혼란이 더욱 커져서 난 마지막으로 성경을 참고했다.
성서라는 것은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보편적인 윤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한 바와 같이 성서에 비춘 나의 새로운 기준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약간의 고통과 함께 윤리 기준을 원위치 시켰다.

윤리 기준이라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열려 있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함을 안다.
그러나 그 배려하는 자세의 기본에는
내가 믿고 따르는 절대적인 기준은 꼭 필요함을 또한 깨닫게 된다.

2 comments:

Anonymous said...

그 윤리는 누나만이 가질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해. 다른 누구의 말을 들어줄 순 있지만 난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기에 나를 함부로 비판해서 안되는거고, 만약 그렇게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일 뿐...그냥 그렇게 봐주면 되는것 같아...

Silvia said...

totally agree with you *^^*